러시아가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는 외국인에게 임시거주허가(RVP)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한국 국민도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단순한 장기체류 편의 조치가 아니다. 신청자의 이주 동기가 법적 요건에 포함돼 있어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기업인과 교민은 제도의 성격과 향후 체류 조건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전통적인 러시아의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임시거주허가(RVP) 취득 절차를 간소화한 특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대상국에 포함돼 한국 국민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8월 19일 대통령령 제702호 ‘전통적인 러시아의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관하여’에 서명했다. 주요 조항은 같은 해 9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 대통령령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은 러시아 정부가 매년 정하는 RVP 발급 쿼터에 관계없이 임시거주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러시아어 능력과 러시아 역사·법률 기초지식을 증명하는 서류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적인 RVP 신청에 비해 일부 진입 요건을 크게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제702호의 본질은 새로운 종류의 장기비자를 발급하는 데 있지 않다. 특정한 이주 동기를 가진 외국인에게 기존 RVP를 취득할 수 있는 별도의 법적 경로를 제공하는 제도라는 점이 중요하다.

특별 비자와 RVP는 어떻게 다른가

대통령령 제702호 제4항은 대상 외국인에게 3개월짜리 단수 사적 방문 비자를 발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비자는 러시아 입국 후 RVP를 신청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로 장기거주를 허용하는 RVP는 아니다.

러시아 내무부는 제702호에 따른 RVP 신청이 해외 러시아 대사관·영사관뿐 아니라 러시아 국내 내무부 이민 담당 부서와 지정된 접수기관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입국 방식에 관한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일반여권 소지자에게 1회 최대 60일, 180일 동안 누적 90일의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는 협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정의 무비자 혜택은 원칙적으로 취업·학업·거주 목적의 입국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인이 무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장기거주 목적의 입국과 RVP 신청 절차까지 모두 보장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제702호에 따른 특별 입국비자 이용 여부와 러시아 국내에서의 신청 가능성은 본인의 체류상태와 입국 목적에 따라 관할 공관 또는 내무부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왜 대상국에 포함됐나

러시아 정부는 2024년 9월 17일 정부 명령 제2560-р호를 통해 제702호 적용 대상인 47개 국가·지역을 지정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과 함께 대한민국도 명단에 포함됐다.

러시아 정부가 이들 국가를 분류한 공식 기준은 ‘전통적인 러시아의 정신적·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파괴적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요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 및 지역’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자국의 가치관과 정책적 기준에 따라 설정한 분류다. 그러나 정부 명령에는 한국을 비롯한 각 국가의 어떤 개별 법률이나 사회정책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열거돼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인이 제702호를 신청하기 위해 한국의 특정 법률이나 정책 하나를 반드시 지목해 반대해야 한다고 규정된 것은 아니다. 반면 대한민국이 대상국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자동으로 RVP 취득 자격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대상국에 속한다는 국적 요건과 개인이 충족해야 할 신청 사유는 구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이주 동기’

제702호의 핵심은 신청자가 러시아로 이주하려는 이유에 있다.

대통령령 제1항은 자국 또는 영주국에서 시행되는, 러시아의 전통적 정신·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이른바 ‘파괴적 신자유주의 이념을 강요하는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아 러시아로 이주하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어 제2항은 RVP 신청서에 이러한 이주 동기를 명시하도록 요구한다. 특별 입국비자를 신청할 때에도 같은 취지의 동기를 서면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는 제도의 정치적·가치적 배경이 단순한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행정절차의 신청 근거에 반영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싶다”, “장기체류가 필요하다”, “일반 RVP보다 절차가 간단하다”는 사정만으로 제702호의 법적 신청 취지가 충족된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이나 주재원에게 이 차이는 중요하다. 취업이나 가족관계 등을 근거로 한 다른 체류경로와 달리, 제702호는 신청자의 특정한 이주 동기를 전제로 한다.

실제 자신의 가치관과 이주 사유가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면 이를 정당한 체류경로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쿼터나 시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생각과 다른 신청 사유를 작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 외국인법은 고의적인 허위 정보 제출 등을 RVP 발급 거부 또는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신청서에 기재하는 동기가 공식 행정서류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작성 내용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간소화된 절차에도 남아 있는 체류 의무

제702호에 따라 쿼터와 러시아어·역사·법률 지식 증명 요건이 면제되더라도 일반적인 신원·보건 심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경력증명서와 필요한 번역·인증, 건강검진, 지문등록 및 사진촬영 등의 절차는 여전히 적용된다. 건강검진에는 법령에 따른 감염성 질환 및 약물 관련 검사 등이 포함된다.

허가 취득 이후에도 일반 RVP에 적용되는 체류관리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RVP의 유효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다. 허가를 받은 외국인은 매년 거주 사실을 확인하는 신고를 해야 하며, 실제 거주지와 근로활동 등에 관한 관련 규정을 따라야 한다.

기업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근무지역과 해외 체류기간이다.

RVP 보유자는 원칙적으로 허가를 받은 러시아 연방주체 안에서 근로활동을 해야 한다. 법정 예외가 있지만, 모스크바에서 허가를 받은 사람이 다른 지역의 사업장에서 상시 근무하려는 경우에는 적용 요건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과 러시아를 자주 왕래하는 사업가라면 해외 체류기간도 관리해야 한다. 러시아 외국인법에 따르면 한 역년 동안 러시아 밖에 머문 기간이 합산 6개월을 초과하면 원칙적으로 RVP 발급 거부·취소 사유가 된다. 다만 업무상 필요에 따른 출국이나 중대한 질병 등 법정 예외가 있어 개별 사정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다.

이처럼 제702호의 특별성은 주로 허가를 신청하는 단계에 있다. 허가를 취득했다고 해서 체류·근로 관련 일반 규정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얼마나 이용하고 있나

제702호는 이미 실제 이민행정에서 운용되고 있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2025년 10월 22일까지 이 제도를 통해 RVP를 신청한 외국인은 2,275명이었다. 2026년 4월 27일에는 누적 신청 건수가 약 3,400건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자료를 인용한 인테르팍스의 202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24년 9월부터 2026년 3월 말까지 약 3,300명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약 3,000명이 RVP를 취득했다.

신청자와 실제 허가 취득자의 통계는 집계 시점이 다르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이 수치는 제702호가 상징적인 정책에 그치지 않고 실제 외국인 이주경로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공개된 전체 통계만으로 한국 국적자의 신청 규모나 허가율을 별도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한국 공직 진출과 신원조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제702호를 검토하는 한국인에게는 향후 한국에서의 경력이나 공직 진출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먼저 분명히 할 점은 러시아의 RVP를 취득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 규정된 일반적인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702호에 따른 RVP를 취득하면 한국에서 공무원이 될 수 없거나 자동으로 법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주장은 현행 법령에 근거한 설명이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와 국가안전보장 관련 직위의 신원조사는 별개의 문제다.

대한민국 보안업무규정 제36조는 국가기밀을 취급하는 특정 공무원 임용예정자, 비밀취급 인가 예정자, 국가보안시설 관련 인원 등에 대해 신원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국방·정보·보안 등 특정 분야에 진출하려는 경우에는 해외 장기체류 경위나 체류자격 취득 과정이 사실관계 확인 대상이 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제702호 RVP 취득 자체를 한국의 안보상 결격사유로 규정하거나, 해당 허가를 받은 사람에게 자동으로 불이익을 부과하도록 정한 조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실제 판단은 해당 직위의 법령과 심사 기준,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이뤄질 사안이다.

또한 신청 동기가 러시아의 공식 이민서류에 기재된다는 사실과 그 정보가 한국 당국에 자동으로 전달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개 법령만으로 그러한 정보 전달이나 특정한 불이익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장래에 체류자격 취득 경위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본인이 제출한 신청 내용과 실제 이주 사유가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의 선별적 이민정책이라는 배경

제702호는 러시아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기준에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자국이 규정한 사회적·정신적 가치까지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러시아는 2022년 대통령령 제809호를 통해 전통적인 정신적·도덕적 가치의 보존과 강화를 국가정책의 한 방향으로 제시했다. 제702호는 이 정책적 기조를 외국인의 거주허가 제도에 연결한 조치다.

일반적인 취업·투자·가족관계 중심의 이민제도가 경제활동이나 가족적 연계 등을 주요 자격요건으로 삼는다면, 제702호는 러시아가 규정한 가치체계와의 친화성을 특별한 이주 근거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장기체류 제도 전체가 이러한 기준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다. 외국인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취업, 학업, 가족관계, 일반 RVP, 영주허가 등 다른 법적 경로를 검토할 수 있다.

특히 한·러 경제협력에 참여하는 기업인과 주재원은 사업활동의 성격, 근무지역, 체류기간, 가족의 거주계획 및 향후 영주허가 취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한국 국민에게 제702호가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체류 선택지다. 대한민국이 대상국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이 제도를 이용해야 할 의무를 뜻하지는 않는다.

신청 절차의 간편함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실제 이주 동기가 법적 요건에 부합하는지, 허가 취득 이후에도 사업과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러시아 장기체류를 계획하는 기업인과 교민에게 제702호는 충분히 검토할 만한 제도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합한 해법은 아니다. 자신의 체류 목적과 현실적인 업무·생활 조건에 맞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처: 러시아 연방 법률정보 공식포털, «Указ Президент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от 19.08.2024 № 702 “Об оказании гуманитарной поддержки лицам, разделяющим традиционные российские духовно-нравственные ценности”», 19.08.2024;

가란트, «Распоряжение Правительств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от 17 сентября 2024 г. № 2560-р», 23.09.2024;

러시아 내무부 미디어, «Ирина Волк: Заявление о выдаче разрешения на временное проживание в нашей стране может быть подано практически в любой стране мира», 22.10.2025;

인테르팍스, «Разделяющие ценности РФ иностранцы подали около 3,4 тыс. заявок о выдаче разрешений на временное проживание», 27.04.2026;

인테르팍스, «С сентября 2024 года РВП получили 3 тыс. иностранцев, разделяющих российские ценности», 05.05.2026;

러시아 연방 외국인법, «Федеральный закон “О правовом положении иностранных граждан в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 115-ФЗ», 25.07.2002(현행 개정본 참조);

대한민국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 간의 사증요건 상호 면제에 관한 협정」, 13.11.2013;

대한민국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공무원법」 제33조, 02.10.2026(현행 법령 시행일);

대한민국 국가법령정보센터, 「보안업무규정」 제36조·제37조, 19.05.2026(현행 개정령 시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