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페이는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통화도, 이미 완성된 ‘브릭스판 SWIFT’도 아니다. 2018년 국제결제 비용을 줄이고 국가별 결제시스템을 연결하자는 구상에서 출발했으며, 2022년 이후 러시아의 국제 금융망 접근 제한과 브릭스 확대를 거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다. 핵심은 루블·위안·루피 등 기존 통화를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국가의 결제 인프라를 연결하는 것이다. 2026년 현재 이 프로젝트는 아직 구축 단계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라시아 경제권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발전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브릭스페이(BRICS Pay)를 러시아가 서방의 금융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결제망으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프로젝트의 출발은 2018년이다. 브릭스 비즈니스 이사회는 당시 회원국 간 국제결제 비용을 낮추고 국가별로 분리된 결제 인프라를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기업용 서비스 구상이 구체화됐고, 2021년에는 시스템 개발을 위한 실무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브릭스페이의 전략적 의미를 크게 바꾼 것은 2022년이었다.
러시아 일부 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금융 메시징망 접근이 제한되고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결제수단을 해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문제가 현실화됐다.
러시아에는 미르 카드와 신속결제시스템(SBP)이 있고, 인도에는 루페이와 통합결제인터페이스(UPI), 중국에도 독자적인 카드·모바일 결제 인프라가 있다. 각 시스템은 자국 시장에서 폭넓게 사용되지만 국가 간 연결은 제한적이다.
브릭스페이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프로젝트다.
새로운 화폐보다 기존 결제망의 연결이 핵심
브릭스페이의 기본 개념은 하나의 거대한 중앙 결제센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각국이 이미 구축한 카드망과 QR 결제, 은행 시스템, 실시간 결제망을 게이트웨이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인도가 UPI를 포기할 필요도, 러시아가 기존 결제망을 폐기할 이유도 없다. 서로 다른 시스템 사이에서 결제정보를 교환하고 대금을 정산할 수 있는 기술과 공통 규칙을 마련하면 된다.
따라서 브릭스페이는 새로운 공동통화보다 국가별 결제망을 연결하는 ‘결제 인터커넥터’에 가깝다.
이러한 구상은 국가별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러시아에는 제재에 따른 결제망 단절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도는 UPI와 루피의 국제적 활용 확대에 관심이 크다. 중국 역시 자체 금융 인프라와 위안화 결제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처럼 브릭스 회원국의 목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결제협력의 공통분모는 달러를 일시에 대체하는 단일 통화보다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제경로를 늘리는 데 있다.
기술적으로 브릭스페이는 소비자와 상점 간 결제(C2B), 기업 간 결제(B2B) 등을 포괄한다.
소비자용 서비스는 스마트폰과 QR코드를 활용한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출장자가 이용 가능한 결제수단을 등록하고 현지 상점에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업 간 결제는 훨씬 복잡하다. 국제거래에는 환율과 외환규제, 자금세탁방지, 고객확인, 무역서류, 은행의 거래심사 등이 함께 적용되기 때문이다. 결제정보를 직접 전달하더라도 실제 자금의 정산과 환전은 금융기관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결국 브릭스페이의 핵심 과제는 단순한 결제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의 금융 인프라와 규제를 연결하는 데 있다.
2024년 첫 시연에서 2026년 인도 협력까지
브릭스페이는 2024년 10월 모스크바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소비자용 QR 결제서비스를 시연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500루블의 시험용 잔액을 지급받아 모스크바 국제무역센터 내 매장에서 결제를 체험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발표됐지만 실제 상용화는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됐다.
2026년 6월 러시아 경제매체 알비케이(RBC)는 브릭스페이의 전면적인 서비스 출시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브릭스 비즈니스 이사회는 소비자용 서비스의 확대보다 국가별 결제망의 상호운용 표준을 마련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들어 주목되는 움직임은 인도와의 협력이다.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와 브릭스페이, 브릭스페이 인디아는 2026년 9월 인도 결제 인프라와의 연결 가능성을 검토하고 시범사업을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실시간 결제망인 UPI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브릭스페이와의 기술적 연계가 실현된다면 러시아와 인도를 비롯한 국가 간 결제망 연결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업 간 결제 분야에서도 새로운 일정이 제시됐다. 브릭스페이 운영사는 2026년 10월 7일 러시아 언론을 통해 중개은행을 거치는 결제 단계를 줄이는 기업 간 국제결제 방식을 2027년 하반기부터 시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는 시범사업 목표이며, 브릭스 회원국 전체에서 통합 결제서비스가 시작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브릭스페이와 브릭스 공동결제망은 다르다
브릭스페이를 이해할 때 구분해야 할 부분은 민간 차원의 결제 프로젝트와 정부 간 금융협력이다.
브릭스페이는 브릭스 비즈니스 이사회와 기업·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프로젝트다. 반면 브릭스 국경간 결제 이니셔티브는 각국 재무당국과 중앙은행이 참여해 자국통화 결제와 금융 인프라의 상호운용성을 논의하는 보다 광범위한 협력 구상이다.
2026년 9월 뉴델리 정상회의에서도 브릭스 국가들은 자국통화를 이용한 무역·투자 결제와 금융 메시징 채널의 상호운용성을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동시에 회원국마다 경제구조와 금융정책이 달라 모든 국가에 적용할 단일 모델은 없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는 브릭스 금융협력의 현실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결제망을 다변화하려는 공통된 방향은 있지만 통합 시스템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와 별도로 논의되는 ‘브릭스 브리지(BRICS Bridge)’는 중앙은행 차원에서 자국통화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을 활용한 국경간 정산방식을 검토하는 구상이다.
브릭스페이, 브릭스 브리지, 브릭스 국경간 결제 이니셔티브는 상호 연관성이 있지만 동일한 시스템은 아니다.
또한 SWIFT는 기본적으로 금융기관 사이에서 송금지시와 금융정보를 전달하는 네트워크다. 브릭스페이는 이러한 메시징 기능을 포함해 국가별 결제수단과 결제 인프라를 연결하려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기능과 범위가 다르다.
따라서 현재 브릭스페이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현은 ‘SWIFT의 완전한 대체’보다 ‘국경간 결제경로의 다변화’다.
물류의 길 다음에는 ‘돈의 길’이 필요하다
브릭스페이의 장기적인 의미는 달러의 종말보다 유라시아 경제권에서 진행되는 무역과 금융 인프라의 재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 이란, 튀르키예, 중동을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교역망이 발전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결제 인프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에서 카스피해와 이란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국제남북운송회랑은 기존 해상운송 경로를 보완하는 주요 물류사업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육상 교역망도 유라시아 내 경제적 연결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품이 이동한다고 돈까지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화물은 새로운 철도와 항만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만 무역대금은 여전히 환거래은행과 외환시장, 국제 금융망을 거쳐야 한다. 물류경로가 다양해져도 금융결제가 원활하지 않다면 교역 확대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브릭스페이는 유라시아의 물류망 확대를 금융 분야에서 뒷받침하는 ‘결제 회랑’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성공 여부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국통화 간 충분한 유동성과 경쟁력 있는 환전비용, 상업은행의 참여, 금융규제의 조화, 실제 기업과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결제 네트워크가 확보돼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하면 브릭스페이는 단기간에 거대한 공동결제망으로 완성되기보다 러시아와 인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러시아와 중동처럼 교역과 관광 수요가 큰 국가 사이에서 개별 결제경로를 확대하고 점차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 인도는 한국의 주요 경제협력 대상국이며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도 한국 기업의 교역·투자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에는 국제결제의 안정성과 대금 회수 가능성이 중요한 경영 과제다.
따라서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 관련 공관 및 경제단체가 주목할 부분은 브릭스 공동통화의 출범 여부보다 실제 결제 인프라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다.
어느 국가와 은행이 참여하는지, 어떤 통화로 결제할 수 있는지, 환전 및 송금비용은 얼마인지, 거래에 적용되는 금융제재와 외환규제는 무엇인지가 실질적인 판단 기준이다.
특히 새로운 결제망이 구축되더라도 금융제재나 수출통제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러 기업 간 거래에서는 결제수단의 기술적 이용 가능성과 거래 자체의 법적 허용 여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브릭스페이는 2018년 결제비용과 편의성 문제에서 출발해 2022년 이후 금융망의 안정성과 자율성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더하게 됐다. 브릭스의 확대는 국가별 금융 인프라를 연결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높였다.
2026년 10월 현재 브릭스페이는 여전히 구축과 검증의 과정에 있다. 그러나 여러 국가의 결제망이 공존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국제금융 구조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신유라시아에서 철도와 항만이 상품의 이동경로를 넓히고 있다면, 앞으로는 그 길을 따라 무역대금이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가 중요해질 것이다.
브릭스페이는 바로 그 ‘결제의 길’을 만들기 위한 실험 가운데 하나다.
출처: RBC, 「BRICS Pay: что это такое и как устроена система」, 16.06.2026;
타스, 「РФПИ, "БРИКС Пэй" и BRICS Pay India будут развивать трансграничные платежи」, 11.09.2026;
인터팍스, 「Рабочая группа БРИКС по платежам "продолжит обсуждения" по проблематике трансграничных расчетов」, 12.09.2026;
핀마켓, 「Транзакции BRICS Pay без банков-посредников начнутся в 2027 г.」, 07.10.2026;
RBC, 「BRICS Pay для иностранцев предложили запустить в России до конца года」, 17.10.2024;
RBC, 「Минфин сообщил о работе над платформой для расчетов в нацвалютах в БРИКС」, 26.06.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