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산 경유에 대한 수입 규제를 한시적으로 해제하면서 양국의 에너지 거래 재개를 위한 길이 열렸다. 이란 전쟁과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이 겹치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하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대러 제재정책에 예외를 허용한 것이다. 러시아도 경유 수출 제한을 조기에 완화하며 호응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실제 공급능력과 국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에너지 공급 문제가 대러 제재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외교적 이해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금지해 온 러시아산 경유의 직접 수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과 국제시장에 추가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는 10월 중 30만 톤 이상을 공급하고, 11월 50만 톤, 이후 100만 톤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정유시설 가동 상황에 따라 300만 톤을 추가 공급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노바크 부총리는 12월 공급 목표를 100만 톤으로 설명하면서 중기적으로 월 300만 톤까지 수출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유시설의 복구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가 물량은 확정된 인도 실적으로 볼 수 없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같은 날 일반허가 제135호를 발급했다. 이 허가에 따라 러시아산 경유의 판매와 운송, 하역, 수입에 필요한 거래가 2027년 4월 7일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가복지기금, 재무부가 미국 금융기관에 보유한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여전히 제한된다.

러시아 정부도 10월 10일부터 경유 수출금지를 일부 해제하고 우선 50만 톤을 국제시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석유기업들은 정부와 협의해 해외 구매자와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제재 완화와 수출 절차가 시작됐다는 의미이지, 해당 물량의 미국 도착이나 수입 완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왜 러시아산 경유가 필요한가

이번 결정의 직접적인 배경은 국제적인 경유 공급난이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중동의 원유 및 석유제품 공급망이 흔들렸고,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운송 차질과 정유시설 가동 중단이 연료 공급 부족을 심화시켰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까지 겹치면서 경유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더욱 커졌다.

경유는 화물운송과 농업기계, 산업용 장비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가격 상승은 물류비와 생산비를 높이고 소비자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0월 8일 미국의 평균 경유 가격은 갤런당 6.28달러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약 70%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68달러와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미국은 주요 산유국이자 석유제품 수출국이지만, 국제적인 정유제품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까지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는 높은 연료 가격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경유의 수출 제한까지 검토했던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수출을 제한하면 국제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수 있어 러시아의 추가 공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이미 주요 경유 수출국이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새로운 공급원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재와 수출 제한으로 막혀 있던 기존 공급망을 다시 활용하는 데 있다.

경유 가격은 하락, 국제 원유 가격은 상승…시장 안정 효과는 제한적

금융시장은 러시아산 경유의 공급 확대 발표에 즉각 반응했다.

10월 9일 미국의 초저유황 경유 선물가격은 장중 약 5% 하락해 갤런당 4.60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대비 초저유황 경유의 정제마진 지표인 크랙 스프레드는 배럴당 6.45달러 하락한 96.80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실제 정유업체의 순이익이 아니라 원유와 경유 가격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다. 러시아산 경유 공급 확대가 경유 가격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변화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국제 원유 가격은 같은 날 상승 마감했다.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104.72달러로 0.42%, WTI는 91.85달러로 0.39% 올랐다. 미국 멕시코만 지역의 허리케인으로 원유 생산이 중단된 데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는 원유와 경유의 수급 상황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가 추가 공급하려는 것은 원유가 아니라 이미 정제된 경유다. 따라서 경유 가격과 정제마진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국제 원유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공급 규모도 중요한 변수다. 러시아가 우선 공급하기로 한 30만 톤은 약 225만 배럴로, 미국의 하루 경유 수출량 약 150만 배럴과 비교하면 1.5일분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 물량은 미국에 전량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실제 공급능력도 불확실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우크라이나의 공격 등으로 가동이 중단된 러시아 정유시설의 처리능력은 하루 약 310만 배럴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 전체 정유능력의 절반 가까운 규모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 수요와 수출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정유시설 복구가 지연될 경우 수출 확대에도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시장 분석가 로리 존스턴은 러시아가 정유시설 공격을 받기 전에는 이번 합의 물량보다 훨씬 많은 경유를 수출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합의가 단기적으로 경유 가격의 상승 압력을 완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국제 에너지시장의 구조적인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러 제재의 예외,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새로운 변수

이번 거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석유제품 공급 확대를 넘어 미국의 대러 제재정책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입을 금지했고, 2025년 10월에는 주요 러시아 석유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를 도입했다. 이번 일반허가 제135호는 이러한 제재 체계에서 러시아산 경유 거래에 한정해 예외를 인정한 조치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다른 에너지 품목에 대한 제재가 전면 해제된 것은 아니다.

러시아로서는 제재로 제한됐던 수출 경로를 일부 회복하고 미국과 직접적인 에너지 협력 채널을 확보할 기회가 생겼다. 다만 거래가 실제로 확대되려면 운송선박과 보험, 결제은행 등에서 남아 있는 제재 관련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한 반발도 나타났다.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6명은 10월 11일 공동으로 행정부에 러시아산 경유 수입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추가적인 수출 수입을 제공하는 것이 기존 제재정책과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역시 러시아산 석유제품에 대한 기존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시적인 수입 허용이 서방 전체의 대러 제재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국제 경유 공급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에너지 기반시설 공격이 전쟁 수행에 필요한 연료 공급과 수출 수입을 약화시키는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1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대국 에너지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이른바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구체적인 조건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상호적인 공격 중단과 실질적인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공식적인 합의 확인도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에너지시설 공격 중단이 실제로 이행될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이 줄어들면 러시아의 석유제품 생산과 수출 여건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경유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과 아시아 정유시장에 미칠 영향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도 이번 결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원유를 수입해 경유와 항공유 등 석유제품을 생산·수출하는 주요 정유국이다. 러시아산 경유의 국제시장 공급이 확대되면 경유 가격 상승 압력이 완화돼 국내 산업용 연료비와 물류비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 국제 경유 가격이 원유보다 빠르게 하락하면 정유업체의 경유 정제마진은 축소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정유산업에는 에너지 가격 안정이라는 긍정적 효과와 석유제품 수출 채산성 저하라는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한국의 원유 수입비용은 여전히 중동 정세와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러시아산 경유 공급이 늘어나더라도 중동의 원유 공급망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국제 유가의 높은 변동성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이번 합의가 세계 에너지시장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은 러시아의 수출 발표 물량이 실제 추가 공급으로 연결되는지에 달려 있다. 기존 수출물량의 판매처만 변경된다면 세계 전체의 공급 증가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향후 주목해야 할 지표는 러시아의 실제 경유 선적량과 미국의 수입 실적, 러시아 정유시설의 복구 상황, 국제 경유 정제마진의 변화다. 또한 미국의 한시적인 제재 예외가 연장되거나 다른 에너지 품목으로 확대되는지도 중요한 관찰 대상이다.

이번 결정은 에너지 가격 안정이라는 경제적 필요가 기존의 제재정책과 충돌할 때 주요 국가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러시아산 경유 수입 허용이 곧바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정상화나 국제 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 국제 에너지시장은 원유 공급과 정유제품 생산능력, 제재정책, 군사적 충돌이 복잡하게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이번 거래의 의미 역시 단기적인 경유 가격 변동뿐 아니라 이러한 공급망과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 영문 보도와 미국 정부 문서의 제목은 출처 표기 형식에 맞춰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출처: 코메르산트, «Дизельная сделка России и США. Главное», 10.10.2026;

인테르팍스, «Россия начинает поставки дизельного топлива на рынок США и другим партнёрам», 10.10.2026;

인테르팍스, «Россия частично сняла запрет на экспорт дизтоплива, поставит на мировой рынок 500 тыс. тонн», 10.10.2026;

로이터, «Трамп заявил о поставках российского дизельного топлива в США и на мировые рынки», 09.10.2026;

로이터, «Цены на нефть завершили торги ростом на фоне остановки добычи перед ураганом», 09.10.2026;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 에너지, «Маржа дизельного топлива снизилась после объявления Трампом дополнительных поставок из России», 09.10.2026;

AP통신, «Шесть сенаторов призвали Трампа отказаться от плана закупок российского дизельного топлива», 11.10.2026;

로이터, «Трамп объявил об энергетическом перемирии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Украиной, удивив Зеленского», 11.10.2026;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 «Выдача генеральной лицензии, связанной с Россией», 09.10.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