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인공지능을 산업·물류·자율주행에 접목하는 국가 차원의 기술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체 AI 모델과 배송 로봇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첨단 GPU 부족과 낮은 로봇 보급률은 여전히 과제다. 노동력 부족 속에서 AI가 러시아의 새로운 생산성 성장동력이 될지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이 초대형 인공지능(AI) 모델과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가운데 러시아도 AI의 산업적 활용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대규모 민간 투자를 토대로 범용 AI와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기술 자립과 산업 생산성 향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 10월 2일 코메르산트 보도에 따르면 정부 산하 전문 분과위원회는 2027~2030년 국가 AI 도입 계획안을 승인했다. 제조업, 에너지, 건설, 교통, 유통, 행정 등 16개 분야에 170여 개의 추진 지표를 설정하고 32개 정부 부처에 이행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10월 말까지 계획을 확정할 방침으로, AI 정책을 개별 기술 개발에서 경제 전반의 실제 도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자체 AI 모델 개발에서 자율주행·휴머노이드로 확대
러시아 AI 산업의 중심에는 얀덱스와 최대 은행 스베르가 있다. 얀덱스의 생성형 AI ‘알리사 AI’는 2026년 2분기 주간 이용자 3,320만 명을 확보했다. 9월에는 매개변수 800억 개를 가진 자체 언어모델을 공개했다. 연산 시 일부 매개변수만 사용하는 구조를 채택해 제한된 컴퓨팅 자원의 활용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AI가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고 작업하는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자율배송과 자율주행이 앞서가고 있다. 얀덱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배송 로봇 보유 대수는 1,000대를 넘어섰으며, 해당 분기에만 26만 건 이상의 배송을 수행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직원 대상 로보택시 운행도 시작했다. 다만 로보택시는 아직 제한적인 시험운행 단계다.
휴머노이드 개발도 진행 중이다. 스베르는 지난해 11월 AI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 ‘그린(Green)’을 공개했다. 게르만 그레프 스베르 최고경영자는 올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11월 25~27일 개최되는 AI 저니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범용 휴머노이드의 대규모 산업현장 투입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로봇 보급률은 아직 낮아…2030년까지 5배 확대 목표
러시아의 산업 자동화 수준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 로봇 강국에 비해 낮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5년 러시아의 산업용 로봇 보유 대수는 2만1,857대로 전년 대비 10.9% 증가했지만, 제조업 근로자 1만 명당 로봇은 29대에 머물렀다. 정부는 2030년까지 이를 145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8만 대 이상의 로봇을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러시아 산업용 로봇 밀도: 현재와 2030년 목표
수요 확대의 핵심 배경은 노동력 부족이다. 낮은 실업률과 임금 상승, 숙련인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제조업과 물류·농업·광업에서 자동화의 경제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테도(TeDo)와 로봇 기업 쿠카(KUKA)의 공동 연구는 러시아 산업용 로봇 시장이 현재 약 780억 루블에서 2030년 최대 6,300억 루블로 성장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이는 대규모 로봇 도입을 전제로 한 가속 성장 시나리오다.
최대 걸림돌은 첨단 GPU…중국 의존 심화 가능성
러시아 AI 산업의 구조적 약점은 고성능 반도체와 연산 인프라다. 미국은 엔비디아 GPU와 대형 클라우드, 민간 AI 연구개발 생태계를 갖추고 있지만, 러시아는 서방의 수출통제로 첨단 칩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레프 스베르 최고경영자는 지난 5월 자체 AI ‘기가챗’ 운영에 중국산 반도체를 활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술 개발이 곧바로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얀덱스의 자율주행·배송 로봇 사업을 포함한 자율기술 부문은 올해 2분기 조정 EBITDA 기준 60억 루블의 손실을 기록했다. 로봇과 차량 보유 대수 확대, 센서·연산 인프라 투자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이러한 여건에서 러시아의 피지컬 AI는 사람의 모든 작업을 대체하는 범용 휴머노이드보다 물류창고 운반, 공장 용접·검사, 농기계 자율주행, 광산 무인 운송처럼 작업 범위가 명확한 분야에서 먼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로봇을 개발하는 능력과 경제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로봇을 대량 보급하는 능력은 별개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AI 발전은 서방과 동일한 기술 경쟁을 반복하기보다 자국 산업의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의 성패는 AI 모델이나 로봇 시제품의 성능뿐 아니라 안정적인 반도체·부품 공급망, 설비 투자 여력, 실제 운영비 절감 효과에 달려 있다. 한국 기업에도 러시아의 산업 자동화 수요는 주목할 시장 변화지만, 대러 수출통제와 제재 준수, 현지화 요건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결국 러시아 AI 산업의 관전 요소는 미국의 아틀라스나 옵티머스에 필적할 휴머노이드의 등장 자체가 아니다. AI를 실제 생산설비와 운송체계에 얼마나 빠르고 경제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지가 러시아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출처 코메르산트, Все ИИдет по плану, 02.10.2026 베도모스티, Григоренко: нацплан по внедрению ИИ в России примут до конца месяца, 08.10.2026 얀덱스, Яндекс объявляет финансовые результаты за II квартал 2026 года, 29.07.2026 얀덱스, Yandex Open-Sources New AI Model Trained from Scratch, 21.09.2026 로이터, AI-powered robot dances for Putin days after another Russian robot stumbles, 19.11.2025 RBC, Греф пообещал Путину представить новых человекоподобных роботов, 22.09.2026 코메르산트, В 2025 году парк промышленных роботов вырос всего на 10,9%, 25.08.2026 러시아 산업통상부 산업발전센터, Эксперт: «Если предприятие хочет преференций, оно должно локализоваться», 01.07.2026 러시아 산업통상부 산업발전센터, Российский рынок роботизации вырастет в 8 раз к 2030 году, 23.06.2026 로이터, Sberbank seeks Chinese chips to power Russia's GigaChat AI model, 20.05.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