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한국·서방과의 협력을 중시해 군사동맹을 종료했던 러시아가 2024년 북한과의 상호 군사원조 체제를 복원했다. 북러 협력은 이제 군사·교통·경제·교육으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전략적 선택이 달라진 배경과 북한의 미래, 한러관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러시아는 왜 30년 전 스스로 해체했던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다시 복원했을까. 이 질문은 현재 북러관계의 성격뿐 아니라 향후 한반도 정세와 한국·러시아 관계의 방향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동맹보다 한국과 서방의 자본·기술·투자가 국가 발전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서방과의 대립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북한을 장기적인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했다.
단순한 외교정책의 변화가 아니다. 러시아가 국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확보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옐친은 왜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해체했나
북한과 소련은 1961년 7월 6일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양국 중 한쪽이 무력침공으로 전쟁 상태에 놓이면 상대국이 지체 없이 군사원조를 제공하도록 규정한 사실상의 자동군사개입 조약이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국가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옐친 정부는 이념적 동맹보다 경제 재건과 국제경제 편입을 중시했다. 1990년 한국과 소련의 수교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계기였다.
러시아는 한국의 투자와 산업기술을 필요로 했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에 자동으로 개입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할 이유는 약해졌다. 북한 핵개발에 대한 우려도 기존 동맹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한국 정부도 북러 군사동맹 종료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2026년 3월 공개된 1995년 외교문서는 당시 한국이 러시아를 설득해 조약 폐기를 유도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1995년 8월 7일 북한에 조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통보했고, 조약은 1996년 9월 10일 이후 효력을 상실했다. 2000년 새로운 북러 우호조약이 체결됐지만 자동군사개입 조항은 제외됐다.
당시 러시아의 선택은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것이라기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의무를 줄이고 한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실용주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는 다른 결과도 있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러시아가 한반도 주요 안보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경제협력을 우선한 선택이 외교·안보적 영향력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험한 것이다.
푸틴이 28년 만에 군사동맹을 복원한 이유
2024년 6월 19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제4조에는 한쪽이 무력침공으로 전쟁 상태에 놓이면 상대국이 지체 없이 군사원조를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1996년 사라졌던 상호 군사원조 체제가 28년 만에 사실상 복원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배경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서방 관계의 악화다. 러시아에는 군수물자와 군사적 지원이 필요했고 북한에는 안보협력 강화와 경제적·외교적 고립을 완화할 새로운 통로가 필요했다.
북한은 실제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병력을 파견했으며, 2025년 4월 이를 공식 인정했다. 양국은 이러한 협력을 2024년 조약에 따른 군사적 지원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북러관계를 전쟁에 필요한 일시적인 협력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올해 4월 26일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군사협력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027~2031년 군사협력 계획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 계획의 최종 체결 여부와 구체적인 협력 내용은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북한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협력국인 동시에 전후에도 유지할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북제재와 비핵화, 러시아의 정책 전환
러시아의 대북정책 변화는 국제제재와 북한 핵문제에서 더욱 뚜렷하다.
러시아는 2024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제재 이행을 감시하던 전문가패널은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나 기존 유엔제재 결의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 4월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기존 대북제재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재체계의 수정을 요구했다. 7월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한반도 비핵화 요구에 더 이상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서방과 협력했던 러시아가 이제는 북한의 안보상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북한을 국제경제 체제에 완전히 복귀시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엔제재를 변경하려면 안보리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고, 미국과 유럽의 독자 제재도 별도로 존재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현재 전략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완전히 해소하기보다 제재의 제약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독자적인 협력망을 구축하는 데 가까워 보인다.
군사동맹에서 경제·교통 협력으로
이러한 전략은 국경 인프라와 민간 분야 협력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9월 7일 러시아와 북한은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첫 자동차 전용 교량을 개통했다. 약 1㎞ 길이의 왕복 2차선 교량으로, 러시아 측에는 10개 차로를 갖춘 하산 국경검문소도 마련됐다.
러시아는 기존 하산~나진 철도와 나진항을 연결하는 물류사업도 중시한다. 유엔제재는 일정한 조건 아래 러시아산 석탄을 나진항을 통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에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북러 간 일반적인 무역이나 모든 물류사업에 대한 포괄적 면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10월 10일 안드레이 포드욜리셰프 주북한 러시아대사는 무역·투자·에너지·교통·농업·의료·교육·관광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말까지 제13차 북러 정부 간 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를 평양에서 개최할 계획도 공개했다.
20일에는 러시아 교육당국이 평양에서 러시아어 교육센터를 개설하고 인공지능 분야의 교육 경험 교류를 논의했다.
이러한 사업은 북러관계의 기반을 정부와 군대뿐 아니라 기업, 교육기관, 지역사회로 확대하는 수단이다.
다만 기반시설 확충이 곧바로 대규모 경제통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성과는 제재의 적용 범위와 통관, 결제, 운송 수요에 좌우된다. 북한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고려하면 러시아가 단기간에 중국을 대체하기도 어렵다.
북러 밀착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열어두는 이유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월 20일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한국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러시아도 이를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직항편 운항 재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성과를 말하기 이르다고 설명했다.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국제토론클럽과 한국 유라시아정책연구원의 공동 세미나에서도 경제협력 복원과 북극 개발, 한반도 안보가 논의됐다.
발다이클럽은 한 참석자의 표현을 인용해 한국을 ‘가장 우호적인 비우호국’으로 묘사했다. 이는 러시아의 공식적인 국가 분류가 아니라 정치적 갈등에도 양국 사이에 협력의 기반이 남아 있다는 전문가의 평가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북극항로다.
10월 13일 한국 정부가 발표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서는 수에즈 운하 경유와 비교해 운항거리가 약 29%, 소요시간이 약 10일 단축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운항 경험을 축적하되 국제제재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지리적·자원적 강점과 한국의 조선·해운·항만 기술이 만날 수 있는 분야다. 다만 결빙, 쇄빙선 지원, 보험과 금융거래 제한 등으로 경제성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러시아의 선택이 한반도에 남기는 과제
옐친과 푸틴의 정책을 비교하면 러시아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국가전략에 따라 변화했는지 분명해진다.
1990년대 러시아는 한국과 서방을 통한 경제 재건을 위해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종료했다. 반면 현재는 서방과의 대립 속에서 북한과의 군사·안보 협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
그러나 두 시기의 정책이 반드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표는 계속됐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협력 상대와 수단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북러관계는 2027~2031년 군사협력 계획의 이행 여부와 교통·물류·경제협력의 실제 성과를 통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미 형성된 제도적 협력 기반이 곧바로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으로서는 북러 군사협력이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외교·경제적 소통 가능성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북러 군사동맹의 복원이 한러관계의 영구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보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관계 정상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향후 한러관계의 핵심은 북한을 둘러싼 안보 갈등과 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분리해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러시아가 북한을 전략적 동맹으로 선택한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최종 수정 25.11.2024 연합뉴스, Declassified files show S. Korea sought to end N.K.-Russia treaty in 1990s, 31.03.2026 연합뉴스, (3rd LD) N. Korea, Russia agree to offer military assistance 'without delay' if either is attacked: KCNA, 20.06.2024 로이터통신, North Korea confirms troop deployment to Russia, hails 'heroes', 28.04.2025 인테르팍스, Министр обороны России провел переговоры с Ким Чен Ыном в Пхеньяне, 26.04.2026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Security Council Fails to Extend Mandate for Expert Panel Assisting Sanctions Committee on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8.03.2024 주유엔 러시아대표부, Statement by Permanent Representative Vassily Nebenzia at a UNSC Briefing on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30.04.2026 인테르팍스, Москва не поддерживает призывы о денуклеаризации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строва, 22.07.2026 러시아 교통부, На границе России и КНДР открыт автомобильный мост имени Якова Новиченко, 07.09.2026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Security Council Tightens Sanctions on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Unanimously Adopting Resolution 2397 (2017), 22.12.2017 인테르팍스, Посол РФ в КНДР: я вернулся в Пхеньян в период подъема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10.10.2026 러시아 교육부, Сергей Кравцов посетил КНДР с официальным визитом, 20.10.2026 인테르팍스, Москва будет приветствовать шаги Сеула по нормализации двусторонних отношений, 20.10.2026 발다이 국제토론클럽, ‘The Friendliest of Unfriendly Countries’: Relations between Russia and the Republic of Korea in a Modern Context, 15.10.2026 연합뉴스, 李대통령, 부산 찾아 '북극항로 시범운항' 귀항식 직접 참석, 13.10.2026 연합뉴스, 李대통령 '국제사회 제재 지키며 북극항로 대비'…3대 원칙 제시, 13.10.2026
